소위 '역대급' 태풍, 초강력, 슈퍼 태풍 등의 수식어가 붙었던 2022년 제 11호 태풍 '힌남노(HINNAMNOR)'는 9월 6일 오전 거제도와 부산 부근을 통과한 후 동해상으로 물러갔다. 포항에 기록적인 폭우를 야기하는 등 곳곳에 많은 비와 강풍이 야기되었고, 안타까운 피해도 발생했다.
이 포스트에서는 역대 최강이 될 것이라던 힌남노의 위력이 결국 2003년 '매미'와 1959년 '사라' 등에 미치지 못했던 이유를 고찰한다.
① 예상보다 약했던 세력
일단 태풍 힌남노의 세력이 당초 예상보다 약했다. 당초 예보에 따르면 '매미'와 '사라'보다도 강한 세력으로 남해안 상륙이 예보되었지만, 잠정 분석 결과 위 두 태풍보다는 약했던 것이다. 매미는 중심기압 950hPa / 1분 최대풍속 95KT로, 사라는 중심기압 942hPa / 1분 최대풍속 100KT로 상륙한 태풍이었다. 주요 기관들이 분석한 '힌남노'의 남해안 상륙 시 세력은 아래와 같다.
이전 포스트에서 언급했듯 2003년 '매미'와 1959년 '사라' 등은 1분 최대풍속 150KT~165KT의 5등급 괴물 세력으로 발달한 뒤 고속으로 한반도로 돌진했고, 만 이틀이 채 되기 전에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결과적으로 북상하는 동안의 쇠퇴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강한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반면에 힌남노는 최성기 세력부터 위 두 태풍보다 약했던 데다, 대만 동해상에서 장시간 정체함에 따라 해당 해역에서 한반도로 북상하기까지 거의 6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동중국해에서의 재발달 시점(북위 27도 부근)을 기준으로 해도 약 40시간이 걸렸다.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해양 환경과 대륙으로부터 유입되는 건조 공기 등에 더 오래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일본 기상청과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는 태풍의 동중국해 재발달 강도를 비교적 보수적으로 예측(T6.0 상당)했지만, 대한민국 기상청은 자체 분류상 가장 강한 '초강력' 등급(T7.0 상당)으로의 재발달을 늦게까지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기상청의 강도 예측이 크게 빗나간 느낌을 받는 셈이다.
② 동쪽으로 비껴간 경로
11호 태풍 '힌남노' 상륙 하루 전(9월 5일)까지만 해도 주요 수치 모델은 남해안 내륙 관통 가능성을 더 높게 예측했고, 기상청 등의 공식 예보에서도 이를 따랐다. 그리하여 경상남도 내륙 진출 예보가 계속 유지되었지만, 실제 태풍은 첨부된 경로도를 보다시피 동쪽으로 치우쳐 부산과 거제도 일대를 스치듯이 통과했다.
태풍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중심권 및 위험반원에 들어가는 지역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관측된 폭풍이 당초 우려했던 매미와 사라 때의 기록을 크게 밑돌았고, 바람이 예상보다 약했던 만큼 폭풍해일도 미미했다. 대한민국에서 관측된 힌남노와 매미의 풍속(최대순간풍속)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공식 기록은 전반적으로 매미에 미치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관측 시설이 미비했던 가운데 부산 42.7m/s, 여수 46.1m/s의 폭풍을 몰고왔던 1959년 '사라'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힌남노의 강풍으로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매물도 43.1m/s, 가거도 42.3m/s 등의 풍속은 자동기상관측시스템(AWS)의 기록임을 알아 두어야 한다. 이는 비공식으로 취급된다.
③ 태풍의 구조적 문제와 잘못된(?) 세력 분석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태풍의 위력은 풍속으로 결정되는데, 힌남노의 경우 전술한 1번과 2번 요소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관측된 풍속이 너무 약했다. '대한민국이 태풍의 가항반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풍속이 약했던 것'이라는 해설이 넷상에 떠돌지만, 실제로는 위험반원의 풍속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부산 상륙에 앞서 태풍 힌남노의 중심권이 통과했던 일본 오키나와 야에야마 제도(八重山諸島, 흰색 원)의 풍속 기록을 보면, 중심권이 통과할 무렵 10분 평균 15~20m 정도의 바람만이 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대순간풍속의 경우 미야코 섬 공항(=鏡原)에서 40.1m/s를 관측했을 뿐, 그 외 지역에서는 중심권 혹은 위험반원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30m/s 대의 바람이 관측되었다.
태풍 중심이 야에야마를 통과할 무렵 대한민국 기상청은 힌남노의 세력을 중심기압 940hPa / 10분 최대풍속 47m/s로 발표했었는데, 만일 이때의 태풍이 정말로 10분 47m/s의 세력이었다면 적어도 위 기록보다는 훨씬 더 강한 바람이 관측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오키나와 실황은 기상청 발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매미'와 힌남노의 차이가 나타난다. 매미 당시 오키나와 미야코 섬에서는 최대순간풍속 74.1m/s의 초강풍이 기록되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바람을 예고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기록적인 폭풍이 관측되었다.
힌남노의 주변에서 이뤄졌던 각국의 비공식 관측으로 미루어, 기압 해석은 적절했던 듯하다. 그러나 풍속 해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태풍의 세력은 기압이 아닌 '풍속'으로 결정된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의 경우 오키나와 통과 시 태풍 풍속을 1분 평균 85KT(10분 평균 36~38m/s에 대응)로 발표하여 비교적 적합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
풍속과 기압 수치가 동떨어진 데에는 11호 태풍 힌남노가 12호 태풍 후보(주황색 원)를 병합하는 과정이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위성 영상을 비교하면 힌남노의 규모가 전체적으로 훨씬 커졌지만, 레이더 및 마이크로파 영상 등에서는 병합 이후부터 중심권이 다소 넓어지는 경향이 함께 관측되었다.
일반적으로, 중심권이 확장되더라도 재발달과 눈벽 대체 현상(EYEWALL REPLACEMENT CYCLE)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경우 다시금 예전과 같은 조밀한 중심 구조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힌남노의 경우 동중국해에서 재발달한 이후에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중국해 북상 당시 마이크로파 영상에서는 넓은 중심권과 함께 아주 작은 중심 대류역을 볼 수 있는데, 태풍이 재발달하면서 중심이 어느 정도 재건되었으나 그것은 보다시피 아주 작은 영역에 불과했다. 외벽까지 메우지는 못한 채 한반도로 북상했고, 고위도의 부정적 환경(건조 공기 등)과 마주하자 그나마 유지됐던 미소 중심이 붕괴되면서 전반적으로 완만한 기압경도의 태풍이 되었다고 추측된다.
이후 제주도 남쪽 먼 바다에 위치한 해양 관측 부이(남해465) 및 일본 대마도 등이 힌남노의 오른쪽 위험 반원에 들어갔지만, 기록된 최고값은 남해465 부이의 평균풍속 33.4m/s, 최대순간풍속 42.9m/s와 대마도 쓰시마 시 이즈하라의 평균풍속 28.1m/s, 최대순간풍속 44.7m/s 등에 머물렀다. 모두 당시 기상청 발표 세력에 미치지 못한 기록이다.
결국 공식 기록 최고값을 정리하면 힌남노의 가항반원에서는 최대순간풍속 43.4m/s(울릉), 위험반원에서는 44.7m/s(대마도 이즈하라)의 바람이 관측되었다. 위험반원과 가항반원을 가리지 않고 당초 위협에 걸맞지 않은 바람이 분 것이다.
'역대급' 및 '초강력' 태풍이라는 수식어로 한반도를 위협했던 힌남노는, 예상보다 급격한 약화 / 진로의 동쪽 편향 / 구조적 문제 등이 있었다. 또한 기상청 등은 이 태풍의 구조적 문제 등을 세력 발표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사후 해석(BEST TRACK)이 어떻게 될 지 지켜볼 부분이다.
《2023년 9월 UPDATE》 결국 2023년 발표된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와 일본 기상청(JMA)의 공식 최종 분석에서, '힌남노'의 대한민국 최접근 세력(최대풍속)은 JTWC 기준 80KT(1분 평균, 약 40m/s), JMA 기준 70KT(10분 평균, 약 35m/s)로 확정되었다. SSHWS 분류로는 '1등급 태풍'에 해당한다. 강한 세력인 것은 맞지만 '역대급'이라는 표현은 과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셈. 태풍 대비는 물론 중요하나, 실제 위력에 맞게 대책을 세워야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이는 개선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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