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 태풍 바비(BAVI)는 한반도 북한 지방을 관통한 뒤, 8월 27일 오후 3시경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소위 '역대급'의 강풍과 피해가 예상된다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내륙 지역의 최대순간풍속은 20m/s 남짓에 머물렀으며 비교적 태풍 중심에 가까웠던 서해 도서 지역(島嶼地域)의 바람도 50m/s를 넘지 않았다. 관측된 풍속 기록만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게 없었던 태풍이다.
이는 태풍 바비의 진행 경로가 계속 서쪽으로 편향되면서, 대한민국과 태풍 중심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몇 번 강조했듯이, 아무리 태풍의 위험반원에 들어간다고 해도 중심권이 비껴갈 경우 태풍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상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태풍은 북한 황해도 옹진반도에 상륙했는데, 이때의 태풍 중심과 수도권 인천광역시 사이의 거리는 약 150km다.
다만 이 발표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며, 실제 태풍 바비의 중심은 기상청의 발표보다도 더 서쪽을(더 먼 곳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역대급'을 강조했던 태풍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줄어들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태풍 바비가 한창 충청도 먼바다를 통과했을 때인 8월 26일 오후 10시 20분경(UTC 13:20), 태풍은 북위 35도 진입과 중위도 기압골과의 상호 작용, 연직 시어 강화 등으로 인해 열대저기압 특유의 연직 구조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적외 영상을 보면 중심권에 '눈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나 동시각 해상풍 관측에서는 눈의 서쪽에서 소용돌이가 관측되었다. 즉, 태풍의 실제 중심 위치는 위성 영상에서의 '눈 한가운데'가 아닌 그보다 서쪽(붉은 점)이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기상청의 발표와 미국/중국의 발표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JTWC와 중국 기상국은 실제 중심을 비교적 정확하게 분석(동경 124.3도)하였지만, 동시각 대한민국 기상청과 일본 기상청은 '위성 영상의 눈 한가운데(동경 124.6도)' 중심으로 해석한 것이다.
즉, 위성 영상에서의 태풍 중심이 황해도 옹진반도에 상륙했을 때도 실제 중심은 그보다 서쪽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태풍 중심이 최접근했을 무렵 백령도 기상 관측소의 바람이 남풍 계열이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최종적으로,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와 중국 기상국 등은 중심이 황해도 서쪽 해상을 통과한 뒤 평안북도에 상륙한 것으로 분석했다. 황해도 상륙 후 북한 서부를 종단했다는 기상청의 최종 발표보다 50km 가량 더 서쪽에 해당한다.
8월 27일 오전 10시 14분경(UTC 01:14) 관측된 해상풍 관측을 보아도, 주변 풍향으로 판단했을 때 태풍 바비의 중심(붉은 점)이 북한 평안북도에 상륙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태풍은 대한민국 기상청의 발표처럼 북한 내륙을 종단하지 않았고, 미국 JTWC와 중국 기상국의 발표와 같이 서해를 북상해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선천군 일대에 상륙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태풍의 중심 해석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더러 있는 일이다. 이번 태풍의 경우는 대한민국 기상청뿐만 아니라 일본 기상청도 태풍의 실제 중심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명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경로 분석을 근거로 자화자찬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조롱거리다. 작년의 5호 태풍 다나스 진로 예측 실패 때 문제됐던 부분(링크)이 또다시 반복되고야 말았다. 더 길게 보면 2012년 태풍 볼라벤 경로 조작 논란 이후 나아진 게 없는 듯하다.
'8호 태풍 바비'가 제주도에 근접했던 8월 25일, 태풍의 진로는 지난 포스트(링크)에서 다루었다시피 황해도 서단 상륙과 그보다 더 서쪽으로의 경로(중국 랴오닝성 상륙)로 나뉜 형국이었다. 대한민국 기상청은 홀로 가장 동쪽에 해당하는 황해도 해주시 부근 상륙을 예측했었다.
해상풍 등으로 추정된 중심으로 미루어, 결과적으로 기상청의 예보는 해주에서 황해도 앞바다로 100km 넘게 빗나간 것이다. 저 시점에서 실제 경로와 가장 가까웠던 것은 미국 JTWC와 중국의 공식 예보, 그리고 유럽 ECMWF 앙상블 및 미해군 NAVGEM 등이며, 발생 초기부터 따진다면 일찌감치 북한 상륙을 예측했던 영국 UKM이 가장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상청의 예상 진로가 '정확했다' 혹은 '승리했다'라는 뉴스가 다수 보도되고 있는 것은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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